정들재

세상을 건너는 사다리

제목[연암일기 1] 2024-06-12 17:37
카테고리 소설
작성자 Level 10
"세상은 별안간 탄생한다"

단기로 치면 4070년 계축년이오, 서력으로 치자면 1737년이었던 어느 날입니다.
아침 해가 빛나는 나라라는 의미의 국호인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바로 나, 연암이 태어났습니다.
조선의 21대 국왕인 이금(李昑, 훗날 영조)이란 분이 다스리고 있던 참이었죠.

제가 태어난 방 안은 가득한 수증기와 엄마의 땀이 섞여 무척 끈적한 느낌이었어요. 조선의 공기에는 구수한 흙냄새가 섞여 있었구요. 물론 태어나는 일이란 게 별안간 벌어지는 천재지변 같은 것이라, 당시에는 그런 감흥을 받을 겨를이 없었음을 시인합니다. 나중에 코 밑이 거뭇해지고 난 다음에야 기억을 되살려 보니 그렇더라는 것이지요. 

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방금 태어난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망울이었어요. 그땐 누군지도 몰랐지만 엄마와 산파할머니, 그리고 바삐 오가며 수발을 들어주시는 분이 계셨지요. 그들의 눈빛은 축하나 기쁨보다는 안도의 눈빛이었어요. 어둡고 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.

사실 저도 힘들긴 했지만 드디어 내 세상이 열리는구나, 그런 생각이 컸어요. 따스하고 보드란 벽 너머에서 늘 나를 돌봐주는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된다는 환희감이랄까, 그런 생각을 하니까 머리에서 발 끝까지 짜릿한 느낌이 휘감아 돌아서 어디가 눌려 아픈지도 몰랐어요.

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낯선 풍경과 부아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 눅눅한 공기, 팔다리 움직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서 그땐 정말 '죽는 줄' 알았어요. 그래요, 태어나자마자 든 생각이 '곧 죽겠구나'였다구요. 그게 무서웠나봐요. 크게 울고 말았어요. 내 울음 소리가 낯설었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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