정들재

세상을 건너는 사다리

제목[연암일기2]2024-06-14 12:45
카테고리 소설
작성자 Level 10
"세상은 낯설고 익숙하다"

태어나고 보니 막내였어요. 내 밑으로 동생이 생길는지 정해진 것은 없으니 일단은 반남(나주)박씨 집안의 막둥이라는 게 제가 타고난 지위인 것이죠. 좋든 싫든 말이에요.
  
막둥이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사타구니에 달린 꼬추라는 것도 내 선택은 없었어요. 심지어 박씨 성을 준 아버지조차도 낯섦이 먼저였을 정도에요. 단 엄마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. 열 달을 한 몸으로 지낸 시간이 낯선 세상에서 유일한 익숙함이었던 것이죠.
   
내가 선택한 건 한 개도 없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아요. 울거나 웃는 것밖에 할 수 있는 표현이 없었으니까요. 나이 차가 꽤 있었던 형은 장난기 많은 눈빛으로 자꾸 내 볼을 문지르거나 궁둥이를 토닥여 주며 내 반응을 살폈고, 누나들은 업어 재워주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자기 얼굴을 내 배에 자꾸 비비면서 놀아주었답니다.
 
간지러워서 살짝 몸을 비틀며 웃으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는 표정이 되곤 해요. 그러면 나는 또 그 표정이 보고 싶어서 방긋 웃어 보였고 그렇게 반복하고 또 그렇게 웃고.... 그러다 아버지가 오면 다들 장난을 거두고 이내 하나둘 사라졌어요. 그랬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피해야 할 무서운 것인 줄 알았던 거죠.

런데 아버지와 어머니, 그리고 나만 남았을 때는 아버지도 똑같이 내 얼굴에 뺨을 비비고 그래요. 수염이 무척 까끌까끌해 질색을 하면 그게 뭐가 좋다는 것인지 껄껄껄 웃으시고 또 그렇게 자꾸 비비다가 내가 못 참고 울어버리기도 하고 그랬어요.
김홍도_좌수도해_년도미상_11797.jpg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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